일본에는 환승통로가 없는 환승역이 많습니다. 저번에 소개해 드린 쿠라마에역에 이어 이번에는 골목길로 환승해야 하는 료고쿠역을 소개하겠습니다.
료고쿠역은 도쿄도 스미다구에 위치한 JR 동일본과 도쿄도 교통국의 철도역입니다. JR의 주오-소부 완행선, 도쿄도 교통국의 지하철 오에도역의 환승역입니다. 그런데 환승 통로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쿠라마에역은 적어도 큰 길을 따라서 환승을 하면 되는데, 료고쿠역은 환승 통로가 골목길입니다. 초행길이라면 딱 좋은 곳이죠.
우선 JR료고쿠역에서 지하철 료고쿠역까지 가는 경로를 살펴보겠습니다. 료고쿠역 동쪽 출구에서 나왔을 때 기준으로 500미터입니다. 서쪽 출구로 나와버리면 150미터 더 걸어야 합니다. JR역을 마을 쪽으로 지어도 괜찮았을텐데, 굳이 강 옆에다가 지어버리는 바람에 환승 거리가 더 멀어졌습니다.
옆에 철길이 있다는 것 빼면 평범한 골목길입니다. 누가 이 길을 환승 통로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역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선, 료고쿠역의 역사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역을 길 쪽이 아니라 강가에다가 지었기에 료고쿠역의 환승거리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기준으로는 이 위치가 최선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료고쿠역은 1904년 소부 철도의 터미널역인 "료고쿠바시역"으로 개업했습니다. 하지만 선로는 역 서쪽에 있는 스미다강를 넘지 못했습니다. 대신 스미다가와에 최대한 가깝게 역을 짓고, 스미다강과의 수상 운송과 환승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에는 도쿄 시영 전차를 이용해 도쿄 도심과 연계되었습니다.
료고쿠역은 도쿄에서 치바/보소 반도 방면으로 가는 터미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도쿄, 우에노, 신주쿠, 요코하마, 신바시에 이어 수익 6위를 달성했습니다. 시부야, 이케부쿠로보다도 큰 역이었습니다.
간토 대지진으로 박살이 난 료고쿠역 (link) |
그런데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이 발생합니다. 간토 대지진 발생 후 도쿄는 박살이 납니다. 료고쿠역 뿐만 아니라 도쿄 전체가 박살이 났습니다. 지진 후 복구를 할 겸 시가지의 구획 정리가 이루어지고, 오차노미즈역까지의 선로 부지도 확보가 됩니다. 결국 1932년 7월 1일 오차노미즈역까지 노선이 연장됩니다. 이 때 아키하바라역에서 야마노테선과, 오차노미즈역에서 주오선과 환승이 가능해집니다.
1933년 9월 15일에는 오차노미즈역과 나카노역간의 주오선의 복복선이 개통합니다. 이 때부터 료고쿠역을 발착하던 소부선 열차는 주오선(완행선 선로)을 타고 나카노역까지 직통 운행하기 시작합니다.이 시기에는 아직 료고쿠역에서 치바까지는 전철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승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환승객은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으므로 료고쿠역 이용객 숫자 자체는 줄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료고쿠역에서 환승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료고쿠역의 터미널역으로서의 지위도 점점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1935년 7월 1일에는 결국 치바역까지 전철화가 완성되면서, 나카노역에서 아키하바라를 거쳐 치바까지 환승 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료고쿠역 역사. (c) D-s-yama, CC-BY-SA 4.0 (link) |
1958년 7월 10일, 비전철화 구간인 소토보선, 우치보선 방면 준급/급행열차가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료고쿠역은 중거리 열차의 터미널역으로 부활하기 시작합니다. 여름철이면 보소 반도 방면 임시열차도 다수 운행했습니다.
료고쿠역 3번 승강장입니다. 예전에는 3번/4번 승강장이었고 중장거리 열차가 발착했습니다. 지금은 4번 승강장 및 그 뒤로 있던 선로는 모두 뜯어졌습니다. (c) 東京特許許可局, CC-BY-SA 4.0 (link) |
하지만 1972년 7월 15일 소부 본선이 복복선화됩니다. 기존 선로는 완행선으로 남고, 새로운 선로는 료고쿠역 북쪽에서 분리되어 도쿄역으로 가버립니다. 즉 더 이상 중장거리 열차는 료고쿠역에 올 일이 사라집니다. 역 북쪽에 있는 화물역도 모두 헐리고 스모 경기장과 에도 도쿄 박물관이 됩니다. 터미널역의 지위를 모두 잃어버린 료고쿠역은 완행열차만 정차하는 작은 역으로 남게 됩니다.
이에 이어 2000년 12월 12일 오에도선 료고쿠역이 개통합니다. 하지만 료고쿠역은 스미다 강에 붙어서 건설되었기에 큰 길과 거리가 있습니다. 도쿄 도심과 최대한 가까이 붙이려던 소부 철도의 의지는, 오에도선과의 환승거리를 멀게 해 버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환승 거리를 멀게 한 원인이 되버린 것입니다.
댓글 2
댓글 쓰기
취소댓글 작성이 안 되실 경우 아래 링크를 이용해 주십시오.
댓글 달기